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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서가 필요하다구요?”
직장맘고충상담소 조회수:850 221.159.153.17
2016-04-29 17:42:45

 

증명서가 필요하다구요?

- 정부의 전업주부 어린이집 이용제한에 대한 단상 -

 

울 프 (두 아이를 옆에 두고, 공부하려는 경력단절맘)

 

둘째는 여태껏 밥을 입에 물고 있다. 소파 위에 올라 ‘뚜뚜뚜앙 뚜비뚜앙~’ 노랫 소리에 맞춰 율동을 하면서. “빨리 안 씹으면 TV 끌 거야.” 나는 아이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다. 아이의 입이 작게 오물거린다. 나는 아이의 입을 곁눈질하며 신문을 펼친다. “다 씹었으면 삼켜~” 빠르게 기사의 헤드라인을 훑으며 말한다. 아이는 티비를 보며 띄엄띄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밥을 입에 넣는다.

자, 이제 옷을 입힐 차례다. 두 벌을 가져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그런데 아이가 그 두 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옷장을 열어 이것저것 꺼내보곤 알록달록한 치마를 집어 든다. “좋아~ 그것에다 핑크색 타이즈 신자.” 나의 허용에 아이가 흡족해 한다. 9시 25분. 아이가 어린이집 버스를 타야할 시간. 그런데 현관문 앞에서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아이를 번쩍 들어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 오후에 만나.” 아이는 웃으며 버스를 탄다. “잘 갔다 와.”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여전히 힘든 아침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첫째는 친정엄마에게 맡겼었지만 정서적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둘째는 직장과 5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을 선택해 백일 때부터 함께 출퇴근을 했었다. 이 어린이집은 내가 직장에 다닐 당시 수시로 모유수유하기 위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해줬었다. 덕분에 나는 일하는 와중에 콜을 받아가며 아이가 6-7개월까지 직접 젖을 물릴 수 있었다. 아이가 두 살 때 직장을 그만뒀지만, 아이는 이 어린이집에 계속 다녔다. 단 하원 시간을 오후 2시로 조정했었다. 내가 집안일 하는 시간에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처음에는 내 차로 등하원을 시켰는데 지금은 어린이집 버스가 코스를 정해 온다. 아이가 세 살. 종일반이고, 어린이집을 좋아한다. 나도 선생님이 자주 바뀌지 않은 이 어린이집에 신뢰가 간다.

오전 10시. 나는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미뤄두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서재로 들어간다. 서너 시간 후면,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가 돌아올 시간이다. 그 전에 뭐라도 읽고 뭐라도 써야 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몰입은 깨질 것이고, 다시 책에 집중하기란 힘들 것이다. 올 해는 논문이란 걸 꼭 써야한다. 「페미니스트 서사학과 여성적 글쓰기」, 어제 읽다만 소논문을 책상 앞에 둔다.

 그런데 아까 그 신문기사에 뭐라고 쓰여 있었더라. 전업주부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7시간으로 제한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구직 활동을 하거나 학교에 다닐 경우는 예외조항으로 쳐준다고 하는데 박사 수료 후, 논문 준비 중인 나는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 걸까? 논문은 물리적인 시간 확보와 밤낮 없이 몰입하며 읽고 써야 가능해진다. 그런데 중간중간 아이들을 체크하고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다보면 정신은 분산되고 몰입의 시간은 더욱 파편화된다. 게다가 둘째는 아직도 때때로 새벽에 깨어 운다. 이런 상태를 어떻게 증명한담. 짜증과 한숨이 섞여 나온다.

나는 늘 증명해야 했다. 나의 노동자성은 수시로 예외 취급을 받아왔다. 방송작가로 6년. 시간 강사로 수 년, 계약직으로 3년. 쪼개서 들어오는 강사료와 원고료. 잠깐의 급여와 복지. 그 와중에 임신과 출산. 나의 30대는 늘 어딘가로 출퇴근을 하고 육아를 위해 부산히 움직였지만. 내 노동에 대한 증명서는 새로 만들어야 하거나 흩여져 있어 조각모음을 해야 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만들 때, 지역의료보험에서 제외되길 원할 때, 종합소득세를 신고해야할 때 등등 예외 조항에 따라 이 증명서들이 유효한지 안 한지 나는 늘 평가받아야 했다.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실업급여도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딴 나라 제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이집에도 무슨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게다가 나는 아직 뚜렷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희뿌연 한 전망 속에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기 위해 나는 헤매고 있는 와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몰입을 위한 시간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남편의 퇴근시간은 밤 10시 수시로 새벽 2시, 잦은 회식. 나는 틈새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여서, 불안정한 시간 강사여서, 정규직인 남편의 안정된 회사생활을 위해 육아를 오롯이 혼자 떠맡아야 했다. 육아를 대하는 남편의 안일한 생각이 부당하다 생각했다.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었다. 외롭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계약직 비서로 일할 때, 조직의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주요 자리에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나는 어정쩡한 위치에서 거대 담론과 기획에서 수시로 제외되었지만, 때때로 그들이 논의했던 일을 처리해야 할 실무진에 배치되어 그들의 말대로 움직여야 했다. 나의 노동은 그들의 도구가 되어 그들의 목적대로 움직여줘야 했다. 그들에게 나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의 과정이 무시되는 분위기에 나의 자존감도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간 부족에 시달리며 아이들을 거칠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대하는 나를 발견했다. 첫째가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가 두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일을 그만 뒀다. 한동안 열패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지금. 일을 그만둔 지 2년.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여유를 회복하고, 전업주부로 자리매김 당하면서 나의 일을 겨우 찾으려는 찰나다. 어린이집 돌봄이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시작의 길이 위태로워지는 순간이다. 어린이집에 증명서를 제출한다 해도 이로 인해 나의 이력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아이들의 부모 일이 전부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혹여 엄마들의 능력에 등수가 매겨질까 불편함이 자리 잡는다.

어린이집 이용에 대한 전업주부 운운은 내가 그동안 속으로 싸워왔던 가부장제 안의 육아담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성차별적이다. 육아는 오롯이 엄마 몫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명분화 하고 있는 꼴 아닌가. 도대체 왜 어린이집의 이용 문제가 유독 엄마의 노동성과 관련해 논의되어야 한다 말인가. 왜 어떤 엄마들은 전업주부로 명명되어 사회 유지의 실무적 일을 담당하면서도, 그녀들이 목소리와 생각은 제외되어야 하는가.

워킹맘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또래 동네 아줌마를 만나면서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는’ 엄마들을 본 적이 없다. 그녀들은 육아 이외에도 쉴 새 없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지역과 교회, 성당 등에서 자원이 되어 일한다.

정부에서는 이번 어린이집 이용 시간 제한 정책을 ‘맞춤형 복지’라는 제목 아래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중요한 영아기 아이들의 적정 시간 어린이집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추진된다’고 밝혔다. 그래서 특별히 0~2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단다. 어린이집 이용시간 활용에 있어 엄마들을 ‘생각 없는 타자’로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고스란히 보인다. 비가시화되고, 단자화 된 전업주부의 노동성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이를 역이용행 예산 절감의 대상을 보는 정부의 꼼수로 읽힌다.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에 방점을 둔다면, 아빠들의 퇴근 시간을 어떻게든 앞당겨 육아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시기 육아에 상대적으로 시급히 필요한 것은 아빠들의 육아참여다. 생각 끝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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