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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강남역에 선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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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1:46:13

 

2016년 5월 강남역에 선 목소리들

울프

 

증언을 시작하다

#1 제 주변 여자애들은 성추행 경험을 이야기할 때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뭐,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느낌. 지나간 일이고, 어려서 뭔 일 당하는지도 잘 몰랐고, '이 정도야 다들 겪는 일이니까 호들갑 떨지 않을게. 더 심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잖아' 라는 느낌으로 말합니다. 성폭행은 여자들이 흔하게 많이 겪는 일입니다. 여자니까요.

저는 사실 호들갑을 떨고 싶었습니다. 충격 받았고 상처였다고. 무서웠다고. 우리의 피해 사실에 덤덤한 척 하지 맙시다. 여성들은 밤길을 무서워하거나 누가 뒤쫓아 오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변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변명해야하는 것은 여성들이 아닙니다. 맘껏 분노하고 표현하고 슬퍼합시다.

 

#2 저는 남성으로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술에 취해 집에 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성집단에서 여성 혐오와 폭력이 만연하는 순간에도 침묵하곤 했습니다. 배제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사건은 이렇다. 지난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10번 출근 부근의 한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23살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경찰에 붙잡힌 34살의 남성 범인은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 보도 이후 강남역 부근에서는 죽은 여성을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일어났고, 수많은 쪽지가 강남역 벽면에 붙여졌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후, 5월 20일 오후 5시부터 21일 새벽 1시까지, 서울 신촌에서는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가 열렸다. 약 7시간 진행된 이 행사에 50여명이 참가했다. 현장은 여성민우회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됐다. 앞서 인용한 것은 밤거리 광장에 선 이들의 목소리다. (#1,#2는 한국여성민우회 <"나는 ___에 있었습니다" 여성폭력중단 위한 필리버스터 기록 http://www.womenlink.or.kr/minwoo_actions/18078 >에서 발췌)

사건 발생 일주일. 이제 언론 보도나 사회적 담론은 사건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젠더 불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공의 장소에서 발현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해석의 차이로 옮겨가고 있다. 여성 억압의 역사를 바탕에 둔 ‘또 다른 사건’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개별 사건에 특정 집단이 이상하게 과잉 반응한 ‘해프닝’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여성단체와 여성학자, 풀뿌리 여성들은 사건과 그 이후의 목소리를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길 요구한다. 그러나 여성혐오를 생산하는 일베 회원과 여론 형성의 권력을 가진 보수 언론 매체는 개별적이고 개인적 사건을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하며 집단 행동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행동이라 치부한다.

이 가운데 지난 22일 발표된 “강남역 살인 사건은 계획적이 아니며 원인은 여혐이 아닌 피의자의 정신분열로 본다”는 경찰청의 입장은 일각에서 해석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준점을 바탕으로 제도권(사법 당국)과 주요 언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대중의 시각을 교정하는 목소리로 ‘묻지마 살인’과 ‘증오 범죄’의 용어 상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가운데, ‘여성’이라서 살해당한 피해자의 젠더적 위치와 여성들의 성폭력, 성폭행, 잠재적 두려움 등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증언들은 증발해 버린다.

 

두 개의 토론

24일 방송된 MBC 《100분토론》은 제도권에 부합하여 거대 권력을 가진 언론이 이 사건의 파장으로 비로소 분출되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거세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강남역 살인 사건, 파장과 대책은?>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 토론은 경찰행정학과 교수, 경찰 안보학과 교수, 정신의학과 교수, 변호사라는 직책을 가진 4명의 남성 패널로 진행됐다. 패널 구성만 보더라도 남성 범인에 대한 정신병을 문제 삼고 이후의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이 사건의 ‘파장과 대책’을 조현증 환자에 대한 관리와 그들의 인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집중한 것이다.

토론 초반 한 남성 교수 패널은 ‘묻지마 살해’와 ‘증오 범죄’ 간의 개념과 유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적 긴 시간 장황하게 설명한다. 시각 자료까지 제시한 그 교수는 시청자를 향해 이 사건이 왜 ‘묻지마 살해 사건’으로 분류되는지,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의 가르침을 카메라가 집중하고 사회자가 경청하며 수긍하는 가운데 ‘여성혐오’라는 의제는 사라지고 만다. 이를테면 사건 이후 보인 여성들의 행동은 이 사건에 대한 이해 부족, 오인으로 인한 과잉대응으로 규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론 할 수 있는 피해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패널이나 그 이후 거리에 서서 또 다른 폭력에 대한 두려움, 과거의 폭력 등을 증언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시할 패널이 부재한 가운데 이들의 행위는 토론의 주제인 <파장과 대책> 안에 수렴되지 않으며 담론화 되지 못한다.

2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는 전북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 주최로 <강남 ‘여성살해’ 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가 열렸다. 이번 사건을 젠더 폭력의 맥락과 연결하고, 사건 이후 여성들의 집단적 분노를 조망하며, 언론의 젠더의식에 대해서도 짚었다. 여성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여성단체 활동가 등 총 7명의 발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400여명이 청중이 몰렸다. 주최 측은 갑자기 열린 토론회임에도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해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토론 내용이나 참여자들의 열기는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지 않았다. 이들의 행동은 인터넷을 통해 겨우, 단발적으로 전해질 따름이었다.

 

적극적 듣기가 필요한 시기

리베카 솔릿은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태도를 ‘맨스플레인’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예나 지금이나 호명하고 정의하려는 싸움, 발언하고 경청되려는 싸움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가 ‘여성’이어서 피의자와는 아무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일어난 또 다른 여성들의 행동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그동안 다른 강도의 성폭력에 시달려 왔으며 두렵다는 것을 발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법무연수원의 『범죄백서』(2015년)에 따르면 2014년까지 밝혀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중 88.7%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 성폭력은 10년 전보다 2.5배 늘었고, 범죄불안감을 느끼는 여성은 10명 중 7명꼴이라고 한다. 이런 통계 수치의 역사, 이것이 팩트다. 사회는,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녀와 같은 강남역 밤의 광장에서 선 그녀/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행동에 나선 그녀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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