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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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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 11:23:57

 

지금처럼 해나가겠습니다

 

로즈마리

 

J씨, 저는 엊그제 애들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노트북을 사야겠다고 말이지요. 남편은 나를 힐금 한번 보더니 알아서해, 라고만 하고 왜 필요하냐고 물어보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질문 없는 물음에‘글을 쓸까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글? 피식, 웃더군요. 어. 제 대답에 남편은 더 크게 박장대소를 했더랬죠. 글이 별거인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아가는 것은 크게 느껴졌던 것들이 실은 별거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저는 몇 달 전부터 J씨와 편지로 도란도란 애기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새로 산 노트북을 가방에 메고 당신에게 편지를 쓸 생각에 골목골목 담벼락 너머 빨갛게 핀 장미꽃이 시들어가는 요즘인데도 싱그럽게 느껴질 만큼 설레였더랬죠. 걷다가 신호대기를 반복하는 사이 문득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장맛비가 시작될 거라는 소식에 부랴부랴 세탁기를 돌렸거든요. 빨래를 널고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어질러져 있는 방이 보였습니다. 설거지로 가득 차 있는 싱크대도 보였죠. 아침에 신랑과 애들 밥 주고 나면 설거지가 한가득 입니다. 아! 저는 아침을 먹지 않아요. 모른 척 하고 나왔습니다. 집안일 하다보면 오늘도 저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곧 애들이 유치원에서 올 거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혹시 J씨도 기억하나요.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진 우리의 단골집이었던 그곳. 맞아요! 갈릭버섯 오일 파스타가 맛있는 그 집이요. 당신과 마지막으로 파스타를 먹었던 날, 나는 당신에게 말했죠! “나는 내가 이렇게 살줄 몰랐다.”라고요.
젖먹이 둘째딸을 신랑에게 맡겨놓고 처음으로 혼자 나온 날이었죠. 저는 두 딸을 모두 모유수유를 해온 터라 애들과 떨어져 본 적 없었드랬습니다.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지나고 보니 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더랬죠. 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십 년 동안 들어오던 출산의 공포가 드디어 나에게 찾아오던 그때를요. 환희와 두려움이 교차했습니다. 진통이 시작되었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진통은 저녁이 되자 더 과격해졌고 하늘이 깨질 듯 비명을 질렸습니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살인적인 고통을 저는 처음 겪었습니다.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한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저는 의사와 간호사, 신랑을 붙잡고 절규했습니다. 20시간이 넘게 지속되는 이 고통 속에서 영원히 헤어나지도, 아이를 낳지도 못할 거 같았습니다. 새벽 1시. 아이는 제 품에 안겼습니다. 저는 출산의 고통을 함께 했을 아이가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동안 아이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드랬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이 후 여자의 몸 안에 일어나는 모든 과정과 변화들에 대해 사회는 너무 조금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서 억울했습니다.
아! 이야기가 빗나갔군요. 아이를 낳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결코, 아니었어요.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 여자들은 아기 낳는 이야기가 끝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저도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애들 생일이 다가오면 제 몸이 먼저 기억하고 반응합니다.   

J씨, 우리가 대학시절에 만나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현재 서로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신과 저는 학내에서 여성주의모임을 창설했드랬죠. 학습을 하고 대자보를 써서 붙이고 강연도 열 곤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여성주의를 알게 되어 그것을 실천하던 뜨겁던 날들이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여성인권단체에서 우리는 옆자리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단체 일을 그만둔 이후 당신은 현재의 질서가 아닌 다른 질서 속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드랬죠. 하지만 저는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이론으로만 접했던 것들이 저에게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는 왜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비난했습니다. 여성주의 가치로 삶을 살고자 하는 나는 결혼하면 다른 삶을 살거라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결코 다르지 않더군요. 다시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에도 저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사실 저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3년 동안 엄마가 키워야 한다 라는 아동학자들의 주장 속에 저 역시도 자유롭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을 도맡아하고 친정일보다 시댁 일을 우선시 하는 저는 어느 누구보다 사회에서 부여하는 전형적인 전업주의 역할을 잘 수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성주의를 통해 알게 된 삶과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삶과의 충돌로 저역시도 괴리감에 괴로웠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득문득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나’라고요. J씨, 당신에게도 묻고 싶어요! 결혼하고 아기 낳아 키우고 집안일 하는 전업주부도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있나요?

 저는 결혼제도 안에서 가정이‘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혼 초 음식물쓰레기조차 버리지 않는 남편과 매일매일 다퉜습니다. 남편은 그까짓, 음식물 쓰레기 나중에 버려도 되잖아. 라고 말했지만 저에게는 그까짓, 것이 아닌 더한 의미와 자존심이었습니다. ‘그것마저는 내가 하지 않겠다.’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집안일에 끼워들게 하려고 남편에게 투쟁하며 주부파업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혼자만 아는 투쟁이었죠. 고독했습니다. 그러다 깨닫게 되었죠. 개인의 의지로만 할 수 없는 가족제도는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걸요. 그래요. 결혼을 후회했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헤어짐까지 여러 번 생각했음을 고백합니다.

J씨, 사소하더라도, 이것도 실천이라면, 실천 일 수 있다면 전업주부로 가정이라는 현장에서 계속 투쟁해보겠습니다. 해나가겠습니다.
오! 이런. 너무 제 이야기만 했습니다. 당신은 안녕한가요? 이제야 당신의 안부를 묻는군요. 하지만 이제 그만 편지를 마쳐야 할 거 같아요. J씨. ‘안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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