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기자단

게시글 검색
저항의 치열함은 그녀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직장맘고충상담소 조회수:1438 221.159.153.17
2016-07-28 14:33:08

 

저항의 치열함은 그녀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 책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와 영화 '서프러제트' 함께 읽기 -
 

울  프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영국의 전투파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지칭하는 언어다. 1903년 팽크허스트 모녀에 의해 여성노동자까지 포함한 여성사회정치동맹이 결성되었으며 과격한 운동방법을 취했기 때문에 전투적 참정론자(militant suffragist)라 불렸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먼저 책을 통해서였다.

 

 

“빈민구호소에서 만난 모든 여성이 나를 교육시켰습니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서프러제트를 창립한 에멀린 팽스허스트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자신이 왜 전투파가 되었는지 설명하는데 유년 시절에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진보적 의식을 가진 부모님 아래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성장기를 보냈지만, 무엇인지 모를 결핍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잠결에 “애가 남자애로 태어나지 않아서 안됐어”라는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유당원이었던 아버지는 남녀평등의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분이었기에 이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렸다고 했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남성들이 만든 정치판에서 여성참정권 법안이 번번이 무산되는 것을 목도하고 직접 겪게 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낮은 위치의 다른 여성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 깨달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진다.

그녀는 빈민구제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엄마와 아기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빈민구호소에 온 가난한 여성들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영국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미국 돈으로 주당 2달러에 조금 못 미쳤다. 그 돈으로는 저축은 고사하고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액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는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곳에는 기혼 여성도 많았다. 남편이 죽으면 여성은 연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은 남편이 죽기 전까지 스스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결과 무일푼으로 남겨진 것이다. 빈민구호소에서 여성들은 어느 곳에처럼, 마찬가지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임신한 여성들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 무릎을 구부려 바닥을 닦거나 고된 일을 해야 했고, 아이를 낳은 지 2주가 되어서는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분류되어 아이와 떨어져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에멀린은 열악한 여성 노동자의 처우와 현실을 보며 빈민법의 세부적인 항목들의 개선 필요성과 동시에 법체계에서 젠더적 관점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법제정을 위한 여성참정권은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혹은 조금 더 견뎌내기 위해 꼭 쟁취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었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인생이 있을 것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1912년 당시 영국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개별 여성들이 왜 과격한 서프러제트에 가담하고 자발적으로 보다 더 전투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절박함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세탁공장의 여성노동자 모드 와츠는 당시 참정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에스퀴스 수상에게 증언하기로 했던 동료를 대신해 남성 정치인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게 된다.

모드 와츠는 세탁 공장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랐으며 엄마처럼 그곳의 직원이 되었다. 7살때 아르바이트를 시작 했고 12살에 직원이 됐으며 20살에는 여자 감독이 되었다. 현재 24살의 모드는 말한다. 세탁일은 여성에게 짧은 삶이라고. 모드의 엄마는 그녀가 4살 때 대형 통이 쏟아져 화상으로 죽었다. 많은 여성의 몸이 여기저기 망가지고 손가락이 부서졌으며 하퇴궤양을 앓고 화상을 입기 십상이다. 남성은 배달을 하며 잠깐잠깐 맑은 공기라도 마시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아 독한 화학약품으로 폐가 망가지기 일쑤다. 무엇보다 남성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일은 하지만 급여는 남성보다 더 적다. 모드는 만약 투표권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남성정치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인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순간, 그녀의 앞, 뒤, 옆에 앉아있던 남성 정치인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이 ‘훌륭한 증언’을 들었음에도 남성정치인들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발표를 들으러 광장에 모인 여성들을 공권력을 통해 짓밟고 표적 수사를 했으며 벌금을 물렸다.

이날 이후 모드는 남성들로 둘러싸여진 정치권과 공권력이 폭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일터에서는 과거의 자신과 똑같이 어린 여공이 공장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가정으로 돌아와서는 다정한 사람인줄 알았던 남편으로부터 냉혹한 질책과 냉대를 받는다. 그녀는 고민 끝에 남편이 가지 말라던, 팽크허스트의 연설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50년 동안 평화적인 참정권운동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무시였습니다. 이제 행동과 희생만이 그 해답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소녀들을 위해 싸웁시다. 여성들도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할 자격이 있습니다. 딸들에게도 남자형제들과 똑같은 기회를 줍시다. 우린 범법자가 아닌 법제정자가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앞날을 위해 싸우십시오.”

팽크허스트와의 짧은 만남 이후 모드의 삶은 통째로 바뀐다. 그녀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조롱하고 추근거리는 세탁공장장의 손을 다리미로 짓눌러버린다. 이 일로 그녀는 직장을 잃게 된다. 남편으로부터 쫓겨나 더 이상 아이를 보지 못하게 됐다. 결국 남편은 법적 권리를 내세워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입양을 보내버린다.

서프러제트에게 감시와 처벌을 일삼는 공권력/경찰은 모드에게 말한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중산층 여성들에게 소모품이나 총알받이로 이용당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정보를 넘기라고, 그러면 구해주겠다고 말이다. 모드는 고민하지만, 결국 거절한다. 그리고 더욱 치열한 서프러제트가 된다. 아이를 되찾아오고, 차별없는 일터를 만들고, 딸들에게 다른 삶을 주기 위해서.

 

서프러제트들은 결속력이 강하고, 정치적 행동을 빠르게 했다. 다른 의제는 다루지 않고, 오로지 참정권 쟁취만을 목표로 했던 결과다. 이 목표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기꺼이 많은 희생을 치뤘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는 외침이나 주장, 결의안이 번번이 무산될 때마다 그녀들은 더욱더 강력하고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유리창을 깨고, 방화를 하고, 단식 투쟁을 했으며, 건물에 자신의 몸을 결박하고, 감옥에 갇히고,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까지도 보여줬다. 결국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은 1928년 팽스허스트 사망 직후 실현되었다.

기존 역사와 미디어에 의해 고착된 서프러제트의 이미지는 ‘괴물’이었다.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유명인사가 되기 위한 부유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온건파(서프러지스트)를 넘어, 강경파(서프러제트)의 핵심에는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당시 가장 낮은 계층의 그녀들이 돌을 들었던 이유는 살기 위해서, 더 견디기 위해서였다. 이 저항의 치열함은 그녀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팽크허스트에게는 다른 빈민 여성들이, 빈민 여성이나 여성 노동자에게는 팽크허스트가.

 

 

한국의 여성 정치와 여성 의제, 행동의 문제

한국의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48년이다. 그러나 당시 제헌국회는 전원 남성 의원만으로 개원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결과 여성 국회의원 숫자는 전체 의원 수 중 17%를 기록했다. 7월 초, 이들 여성의원들 중 4선 이상의 여성들(새누리당 나경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민의당 조배숙,  정의당 심상정)이 국회회관에 모여 초당적으로 여성폭력 등 당면한 현안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한다.

비슷한 시기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6,47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6,030원보다 440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태반이 여성노동자이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는 이들이 바로 여성들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이라는 의제는 여성의제가 된다. 그러나 결정권한이 있는 총 27명 위원의 대다수가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4선 이상의 여성 의원들이 정치권에 진출한 51명의 여성의원들을 규합하고, 여성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한 목소리로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의 여성비율을 50%까지 맞추라고 각 정당에 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목표 하나만, 실현되어도,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댓글[1]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