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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의 노동성, 유휴 인력과 대체 인력사이
직장맘고충상담소 조회수:1352 221.159.153.17
2016-08-30 14:05:11

가정 주부의 노동성, 유휴 인력과 대체 인력 사이

 

울프

 

갑자기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심근경색이었다. 한밤중 통증이 와서 119를 손수 불러 갔다고 한다. 옆에 잠자고 있는 아빠를 깨우지 않고.

70대인 노년의 엄마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둔다. 삶의 질곡만큼 남녀, 부부 간에도 많은 질곡이 있었다,는 문장으로 퉁치자.

병원에 입원한 당일부터 각종 검사와 수술이 진행됐다. 자식이 다섯 있었다. 문제는 엄마의 곁에 누가 있을 것인가 였다. 아니, 그것은 ‘다행히도’ ‘문제’가 아니었다. 셋째인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보호자는 보조 간호 인력이 된다. 나는, 소변의 량을 시간에 맞춰 체크했고, 엄마의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 엄마가 불편해 하거나 두려워하는 상황을 간호사나 의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카톡을 통해 형제들에게 ‘보고’ 했다. 사흘 후, 엄마는 천만 다행히도 무사히 집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다른 검사와 처방이 진행됐기 때문에 불편한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들락날락 해야 했다. 덕분에 네 살 된 둘째 아이가 돌아오기 전(오전 10시~오후 4시까지)까지 확보한 나의 학업(나는 현재/아직까지도 공부 중이다. 학위는 다시 다음 학기로 미뤄질 것 같다. ㅜㅜ) 시간은 조각조각 났다. 내게도 뚜렷한 일이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이 한편으로 밀려왔다. 엄마의 상태를 묻는 형제들의 전화가 어찌된 일인지 한편으로 미웠다.

 

이 경험을 끄집어 낸 것은 ‘가정 주부’의 노동성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가정 주부’란 국어사전에 ‘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여자 주인’라고 되어있다. 이 단어를 대체할 언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재 직장을 가지지 않고 집이나 사회(시민단체, 교회, 학교 등)에서 다양한 노동을 하고 있는 활동인을 지칭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쓴다. 주부의 살림살이라 퉁치는, 이 노동에는 사실 알고 보면 다양한 노동의 종류가 뒤범벅되어 있다. 집안일이라 통칭하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요리와 설거지, 청소와 세탁이 있다. 이 일은 집 밖에서 가게를 차리거나 직장에 들어가 수행하면 각각 전문적인 일로 세분화 된다. 나는 아직까지도 할 수 있는 반찬수가 적고 청소의 기술도 잘 모르겠다. 집에 손님이 온다하면 청소가 가장 걱정이다. 아무튼 이 일에는 적지 않은 기술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이 들어간다. 살림살이 ‘주관’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맡아진 짐과 같다.

그리고 육아 노동이 있다. 아이에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나이는 세 살까지다. 그 다음 단계는 기저귀를 떼기 시작하는 네 살. 그 다음 단계는 혼자 화장실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다섯, 여섯 살이다. 일곱 살 정도가 되면 한결 수월해진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큰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 둘째를 출산하게 됐다. 그리하여 육아만 10년째고, 10년 째 나를 위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다음 요새 가장 두려워진 간호 노동이 있다. 직장에 다닐 때 아이를 키우며 난감할 때가 많았다. 대개 아이가 아플 때다. 아이는 수시로 감기 걸렸고, 어린이집마저 갈 수 없는 수족구라도 걸린다면 할머니 손에 맡기거나, 월차를 활용해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했다. 그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도, 대체 수단을 찾는 것도, 월차를 내는 것도 엄마인 내 몫이었다. 한편으로는 아픈 아이가 완전히 회복 될 때까지 여유 있게 곁에 있어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늘 시간에 쪼달렸고, 약병을 가방에 들리운 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이 역시 엄마의 역할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 직장일과 집안일, 육아로 육체와 감성의 바닥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신없는 출근 준비, 속절없이 긴 병원의 대기시간(환절기 때 소아과를 가봐라). 퇴근 후 돌아온 전쟁터 같은 집안(언젠가 엄마는 우리집이 뒤죽박죽이어서 도둑이 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패잔병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일 년, 이 년이 되고 보니 사회가 형제가 조금씩 나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 정부는 가정 주부(전업 주부)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어린이집 이용시간에 제한을 두겠단다. 형제 자매는 자신들의 육아 노동에 나를 호출한다. 집안에서 돌봐야할 환자가 생기니까 가장 먼저 달려 가야 하는 의무감과 책임감, 이에 더불어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시선’이 덧붙여진다.

뜬금없이, 가정 주부로 있었던 여동생이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겠다며 나에게 여덟 살, 아홉 살인 자신의 두 딸을 주말에 맡아 달라 ‘통보’해 왔다. 과거 빚이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 큰 애를 정말 수시로 그 여동생에게 맡겼었다. 동생의 삶을 보아왔기에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돌봄의 몫이 막상 나에게 떨어지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주말이 되면 나는 떨떠름한 태도로 아이들을 맞고 있다. 덕분에 수지맞은 것은 네 살배기 둘째다. 요즘 언니들과 소꿉놀이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 또 뜬금없이, 목포에서 맞벌이하는 막내 남동생이 일주일 간 세 살, 다섯 살 된 아이들을 맡아줄 수 없겠냐고 전화를 했다. 그 고된 생활을 알기에 말로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전주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 아이들이 아빠와 안 떨어지려고 억세게 우는 바람에 동생이 다시 그 아이들을 안고 되돌아가 갔다. 나는 육아 전쟁을 예상하고 두근거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엄마가 아프셨다. 아니 그전부터 엄마의 몸 상태는 안 좋으셨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유휴 인력이라 생각했던 엄마가 안 되니까, 대체 인력으로 형제들이 나를 찾는 셈이다. 돌아보면 엄마는, 다섯 형제를 키우고도 결혼한 아이들의 반찬을 대고, 수시로 넘나드는 손주 녀석들을 돌봐왔다. 은근히 엄마가 좀 더 건강해서 이런 일들을 오래오래오래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엄마에게도 다른 삶을 꿈꾸고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좀 더 건강했을 때.

직장 일을 하는 형제들의 마음에는 한 켠에는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는 생각이 내려앉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 사적인 일이라 치부되는, 집안의 소사를 대체 해 줄 수 있는. 그런데 나 또한 내가 급할 때, 그때그때 도움을 받았으면 좋을, 안전한 대체 인력이 보험처럼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사적인 영역이라 치부하는 가정에서도, 대체 인력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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