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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편의 수다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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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0 14:20:15

아내가 남편의 수다를 듣다; 남성·남편·아빠로 살아가는 이야기

 

로즈마리

 

2009년 1월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나는 남편을 ‘거리’에서 만났다. 각자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을 위해 촛불문화제가 열리던 그 곳에 우리는 자주 마주쳤고 점차 연인사이가 되어 2011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현재까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이다.
남편과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사소하더라도 액션을 취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만날 때는 동일한 삶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함께 집에 살게 되면서부터 서로의 차이와 이해할 수 없음에 갈등이 많았다.
결혼을 해보니 함께 살아간다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을 능동적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됐다.

나는 아이들의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전업주부로 있다. 집안일은 안하면 티나고 하면 티안나는 노동으로 매일 반복되는 홀로 하는 노동에 나는 고독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거리가 아닌 집에서 촛불을 들어야만 했다. 가정이 나의 ‘현장’이 되었다. 남편에게 가부장제 결혼제도 안에서 남자들은 얼마나 무임승차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시 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성별에 대한 불평등 즉, 젠더문제는 보지 않고 그저 나를 아이들의 ‘엄마’라는 그 안에 정체성만 위로해주고 공감해줄 뿐이다.

신혼 초 남편과 가사노동 및 아이들 돌보는 문제로 자주 다퉜다. 부부사이도 위태로울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 가족은 고요히 평화로워 보인다. 나는 일상 속 길들여진 무력감에 여전히 집안일을 ‘당연하게’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들을 남편도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남편도 남자라는 이유로 길들여지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남편도 남자라는 이유로 침묵당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한 공간을 공유하며 삶의 동반자로 살아가고 싶기에 나는 남편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여성/남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다.
“자기는 남자라서 행복해?”라는 나의 질문에 남편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이런 남편의 이야기를 기록해보았다.

 

 

가부장제 아래 ‘남자’로 산다는 것

나는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 삼형제중 맏이로 자랐다. 태어나자마다 나는 장손이 되어 있었다. 유년시절 엄한 아빠 밑에서 자라왔고 밖에서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뛰어놀고 하면 아빠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아빠는 항상 친구들이랑 노는 것은 쓸데가 없다는 말을 자주하였다. 그래서 간혹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아빠 눈치를 많이 봤다. 그래서 인지 밖보다는 집에서 노는 것이 맘이 편했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때 그러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한건 아니다. 반에서 성적은 우수한 편이어서 아빠가 거는 기대가 높았다. 반면 나는 공부보다는 노래 부르고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중학생시절 아빠에게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의 가족의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아빠는 남자는 남자답게 키워야 된다며 합기도를 배우게 했다. 합기도장 건너편에 피아노학원이 있었는데 합기도를 배우면서도 창문 너머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피아노 건반그림을 그려서 연습을 했고 기타 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아빠는 많이 못마땅해 하셨다. 대학교 진로도 나는 음악과 관련된 학과를 희망하였으나 아빠의 뜻대로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공부의 흥미를 잃었지만 아빠의 잔소리와 억압 분위기 속에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를 전주로 오게 되었다.(당시 남편은 오수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음) 고등학교에 오자마자 아빠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나에게 아빠는 자라온 환경 안에서 많은 갈등과 억압이 있어서 지금도 불편한 감정이 있다. 아빠는 한 번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아빠가 요구하는 남자답게, 장손답게는 나에게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항상 나를 응원해주고 다독여주는 존재였다.
“너는 노래는 잘하지만 나중에 판사가 되어야해. 왜냐하면 너는 우리 집 장손이잖아.”라는 말을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듣고 자랐다. 

나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허약하고 체구가 작다. 왜소한 몸 때문에 여자몸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힘을 과시하는 남성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몸이다. 나는 스포츠를 싫어한다. 학창시절 운동장에서 축구 한번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남자새끼가 공도 안차냐? 라며 놀려대곤 했다. 나는 스포츠의 폭력성이 싫었다.
21살 때 군대 가기 싫었는데 군대를 가야 했다. 군대에서 폭력성을 다 겪고 나왔기 때문에 내가 남자로 살아가는 건 좋지 않았던 것이 대다수였다. 너는 남성이니까 남성답게 살아야지 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나는 세뇌되어 남자답게 살아야만 할 거 같았다.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 살아보고 싶다. 남자답게 살아야지 라는 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노래 부르고, 시 쓰는 걸 좋아했는데 그 당시 친구들은 이해 할 수 없는 놀림거리였다.
남자로써의 삶은 유쾌하지 않다. “남자로 태어나길 잘했어” 라고 생각든 적이 없다. 사회가 가부장남성중심사회이고 남성이 더 혜택 받는 부분은 분명 있다. 하지만 결코 그 안의 나는 행복하지 않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남성이라 힘든 부분도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있고 그 안에 남성들 간의 차별도 존재하는데 특히 남성들 간의 차별은 폭력이 난무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

 

결혼제도 안에 ‘남편’으로 산다는 것

혼자 살 때와 결혼 후 삶은 너무나 달랐다. 같이 살다보니 지켜야 할 규범이 많이 생겼다. 가족이 생겼으니 당연히 혼자 살 때와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결혼하면서 나는 남편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주변에서는 이제 한 집안에 ‘가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결혼한 나에게 집안을 이끌어 나가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혼자 살 때처럼 하면 안 된다며 덕담처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남자는 책임감이 무겁다면서. 하지만 나는 나를 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가장 일수 없지만 만약 가장이 있다면 그건 나보다 아내가 아닐까 싶다. 집안에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돈 만큼은 내가 아내보다 오롯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말이다.
결혼은 곧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쉽지가 않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고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싶다. 협동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겹고 어렵다.

 

가족중심사회에서 ‘아빠’로 산다는 것

경제적으로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할 거다. 아빠로서 지금보다 더 벌어야 아이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늘 고민을 한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버겁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떠한 꿈을 가지고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뭔가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을 내 벌이로는 감당이 안 될 때는 힘들고 괴로울 것 같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하나, 주말에 다른 알바라도 해야 하나 고민될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데 그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한다. 40대가 되다보니 더 앞날이 막막해진다. 간혹 내가 톱니바퀴에 들어가 있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 같다.
5년 후 톱니가 그 궤도에서 빠져버리면 그냥 고철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불안감이 있다. 쉽게 빠져 나오면 안될 거 같은 뭔가 다른 곳에 쓰임이 있고 다른 일에 대한 비전의 고민을 하게 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쩌나 이런 책임감들이 무거울 때가 있다. 뭔가를 봐도 저걸 하면 우리 가족들이 지금의 삶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예전엔 지나쳤던 일들이 돈과 연결 지어 보게 된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지에서 편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돈이 되겠다, 라는 사업구상만 하게 되었다. 홀가분하게 다녀와라,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와라, 했지만 막상 여행지에서 나는 아빠로써의 연장선으로 초원에 맨 땅도 일궈서 생산을 해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할까, 어떤 사업을 하면 잘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평소에 비싼 차, 아파트의 넓은 평수, 브랜드 옷에 대한 욕심은 없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가난한 삶에 대한 힘겨움을 알기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해주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돈이 많아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일상을 살아가하니까.

어릴 적 나는 엄한 아빠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 자식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래서 되도록 자주 놀아주고, 함께 보내기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가도 이럴 시간에 더 한 푼이라도 벌어야 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리석은 생각인줄 알면서도 자꾸 아빠의 역할을 돈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족 안에서 아빠가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역할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돈을 벌 수 없게 된다면 지금 우리 가족의 소소한 행복이 깨져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크다.

 

 
 

 

나는 남편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가부장제가 단순히 여성만이 아닌 남성에게도 억압으로 작동하는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 역시도 기존 남성중심사회의 해석 틀 속에 머물려 남편과 소통해온 것은 아닌지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 안에 가부장성’을 성찰할 수 있었다.

사회는 남성들에 대한 고충과 신세한탄에 대해 충분히 공론화하고 과도할 정도로 정서적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남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오히려 남성들의 가부장성을 더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장치들이 오히려 남성들에게 더한 억압과 규범의식으로 작동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부장중심의 결혼생활은 남성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왜 태어나자마자 여성/남성으로 인식되어 여성/남성다움으로 사회화되어 살아가야하는가 라는 질문들이 생성되었다.

함께 살면서도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억압하지 않고 조율해나가는 관계가 되려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할까. 여성/남성이 아닌 한 개인으로 상호인정 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상호인정’이란 상대의 존재에 반응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뜻 아닐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분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누구도 서로의 역할에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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