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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가시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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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4:19:50

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가시화 하기

『기록되지 않은 노동』 을 읽고

 

울프

 

‘노동’이라는 단어를 문자로 마주하게 되면 어렵게만 느껴진다. ‘용역’, ‘기간제’, ‘파견 계약직’, ‘일용직’, ‘특수고용직’ 등등 고용자의 편의에 따라 붙인 용어 안에 노동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언제인가, 용역직 친구의 계약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여러 칸 중에 ‘사용 용도’라는 단어가 나와서 깜짝 놀랐었다. 사람을 사물화 하는 단어를 마주대하고 세상의 무서움을 알았다. 그런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정규직 사람들의 태도가 두려웠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계약서 한 장 있지도 않았었다. 서른이 되어 들어간 직장은 방송국이었다. 아니, 직장이 아니었다. 나는 방송 작가로 일을 했는데, 아는 선배의 소개로 방송사 측의 간부급의 면접과 간단한 테스트를 거쳤다. 나중에 두 세 명의 경쟁자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도 누군가의 소개였다고 했다. 매일 출근을 했었다. 그때 나는 방송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신기했고 황송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여갈수록 나는 방송국의 직원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방송이 나간 후 그때그때 원고료를 받았다. 한 주가 펑크 나면 당연히 원고료도 없었다. 뭐 그래도 좋았다. ‘원고료’라는 명목이 품위 있어보였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면, 일자리도 한방에 훅,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방송국이 아닌 프로그램과 명운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명운은 정규직과 간부급 인사들의 권한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깨닫고, 나의 위치가 비정규직도 아닌, 특수고용직종군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을 때, 비참함을 느꼈다.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내 노동성에 대한 사회적 위치와 처우, 책임의 범위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동료들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프로그램에 대한 무한 책임과 애정을 갖고 일을 했었다.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노동에 대해 말한다. 열 세 명의 여성이 자신을 포함해 서른 한 명의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쿠르트 아줌마, 행사도우미, 여성 트레이너, 여성 대리운전기사, 톨케이트 여성 노동자, 산모도우미, 보육교사, 방과 후 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원, 소규모 하청공장 여성들, 요양보호사, 시각장애 안마사, 호텔 룸메이트 등등 매우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을 만난다.

“각 교육청 구인 공고에서 돌봄 선생님을 지칭하는 말은 여전히 각양각색이다. ‘초등보육전담사’, ‘초등돌봄전담사’, ‘초등돌봄보육사’…… 지역별, 학교별로 돌봄교실 이용자와 돌봄 선생님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도 여전히 천차만별이다. 이 다름이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 불평등이 정부가 홍보하는 맞춤형 서비스의 그늘이 되지 않으려면, 정말로 정부가 표방하는 ‘엄마 품’으로 교실이 아이들을 품게 하려면, 돌본 선생님의 고용과 처우가 평등하고 안정되도록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 <초등 돌봄교실 선생님이 ‘나 홀로’하는 일> 중에서

“학교에서는 매달 강사가 받은 교육비에서 3%를 학교 운영비로 떼어가요. 전기와 에어컨 사용 명목이죠. 그 비율이 매년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예요. 방과 후 학교는 공교육에서 방과후에도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게 마련한 제도인데, 왜 강사들이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 <8년 차 방과 후 교사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날개없는 천사’와 ‘장애인 밑에서 일하는 한심한 인간’, 참 이중적이요? 특히 장애인 가족들한테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장애인들이 가족의 서열에서 가장 낮잖아요. 그들 밑에서 일하니까 저희를 한심하게 보고,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이 많아요. 장애인한테 하듯이, 우리를 쉬운 사람으로 본다고 할까!” - <장애인 활동보조인 김정남씨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와 기록은 ‘사용 용도’라는 단어 안에 가려졌던 노동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드러낸다. 천차만별 다른 직종의 이야기들 사이에 노동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이 담긴다. 인터뷰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여성들이 몰려있는 직종이라는 것이다. 노동 차별의 현장에 더 한 겹 성차별이 얹혀진다.

그리고 ‘해가 바뀔 때마다 임금협상을 하는 저들과, 파업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손실을 말하는 저들과, 문을 열어놨다는 과장과, 비정규직의 처우를 묻는 저들과, 밥값조차 아껴야 하는 나는, 서로 종이 다른 인간이었다’(어느 하청노동자의 이야기)는 그이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혹은, ‘무엇보다 수금 문제가 너무 힘들어요. 수금이 잘 안되면 대납을 해야 하고, 돈 관리하는 게 스트레스가 많아요’(야쿠르트 아줌마의 이야기), ‘패키지로 이용하거나 하룻밤만 투숙하는 손님이 많은 호텔은 일이 두세 배 더 힘들다. 단기투숙객은 굉장히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편이다.’(호텔 룸메이트의 이야기) 라는 구절에서 나는 내가 그이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안상숙씨가 가진 인간에 대한 믿음과 그녀가 견뎌야 했던 모멸의 현실 사이의 큰 간극이. 그 간극을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인 노동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저 사람의 자리는 나와 다르다’는 냉혹한 편견이. 바라건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엄숙한 노동이 그에 합당한 인정을 받으며, 드러나는 노동, 안전한 노동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기를, 우리 사회가 ‘한 사람의 삶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돌봄노동자 안상숙씨를 인터뷰한 안미선 작가의 글은 가슴을 울렸다.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임금 차이가 별반 없다는 그이들의 직종. 아직도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은 방송작가들의 생활이 다시 떠오른다. 방송 작가들도 90%이상이 여성들이다. 여전히 무한 애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후배들의 생활은 더 나아졌을까?

『기록되지 않은 노동』을 읽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과거와 동료, 후배들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록되어야 할 노동은 아직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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