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게시글 검색
제 2회 거북이걷기대회 '코로나19와 나의 일상이야기 수필공모전' 장려상 "지천명 육아"
직장맘고충상담소 조회수:691 61.81.128.10
2021-01-04 10:25:49

지천명 육아

직장맘인 조카의 딸아이를 봐주려다가 실패한 경험담

왕미선

 

“이모야, 진짜 올거가? 고맙다, 이렇게 빨리 온다고 할 줄 몰랐다.”

맞다. 조카의 부름에 너무 쉽게 대답했다. 언니와 조카 모두 코로나가 극성인 도시에 살고 있어 마음을 졸이고 있던 참이었다. 언니로부터 외손녀를 며칠만 봐달라는 전화를 받고는 바로 승낙 했다. 코로나 대란 한가운데서 손주 돌보기 전쟁 중인 언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결정한 일이었다. 재택 수업으로 대체하는 대학생 아들 둘이 있었으나 엄마가 있고 없음에 무관할 터였다. 일주일 정도치의 옷가지를 챙겨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세 시간을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갔다.

코로나가 잠잠해졌으니 부산에 와서, 열 살 난 딸아이의 온라인 수업도 봐주고 집에만 있는 아이를 구출해 달라는 구호 요청이었다. 조카사위는 대구에서, 조카는 아이와 부산에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중에 코로나 사태를 만났으니 막막했으리라. 학교, 학원 모두 문을 닫아 버렸으니 종일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를 어쩌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전주에 사는 나였다. 유치원 다닐 적의 귀엽고, 야무진 모습만 생각하고 잘 지내다 오리라, 이모할머니인 내가 짐을 꾸렸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10살 난 아이와 하루 지내기가 왜 그리 힘든가. 첫 날은 우리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부산에 도착하자 조카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 우리의 만남을 연결해 주었다. 둘만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지시해 주고는 다시 일터로 바삐 돌아갔다.

아이는 내가 오자마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그동안 혼자 집에만 있느라 답답했는지 얼른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환한 미소 지으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 때는 오길 잘 했구나 싶었다. 게임도 같이 하자고 조르기에 할머니라 잘 못 한다며 지는 척 해줬더니, 재밌는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심 나를 기다린 모양 같았다. 거기까지였다.

아이에게 나는,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온라인 수업은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척척, 조금은 대충 끝내 버렸다. 조카는 아이를 집 밖으로 탈출시켜 주길 원했지만, 아이는 집 안에서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은지 외출을 꺼렸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과 친구하며 한 번씩 내 눈치를 살폈다. 나 역시 아이를 곁눈질하며 나의 본분을 다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조바심을 냈다.

일주일 정도의 짐을 챙겨 달려올 적엔 부산의 드넓은 바다와 멋진 야경정도는 생각하고 오지 않았겠나. 그러나 그것은 아이와 함께 즐기려 했던 것이지, 나 혼자 누리려는 계획은 아니었다. 아무리 바다가 코앞에 있고, 파도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고 해도 말이다. 지척으로 보는 바다가 아이에겐 무에 그리울까. 밖에 나가 자전거타고 놀자고 해 봤지만 자전거도 첫날 원 없이 타지 않았나.

집에서만 지내는 것은 조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이러려고 내가 그 먼 거리를 달려 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이는 이제 할머니의 간섭이나 잔소리가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듯 보였다.

외출하기 싫다는 아이를 남겨두고 혼자서 소일거리를 찾아 집을 나왔다. 마을 근처 공원에 계곡물이 흐르고, 잘 다듬어진 산책로의 벚꽃 둥치 밑으로 버찌들이 떨어져 밭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늘상 거닐던 산책로일 것이었다. 공원에 나온 사람들 모두 오랜만에 나온 바깥나들이에 취한 듯, 바람과 나무가 주는 공기를 한껏 들여 마시며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나도 그들 속에서,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동네 공원의 계곡물 소리에 끌려, 여러 갈래로 난 산책로를 이쪽저쪽 기웃거렸다. 이렇게나 멋진 공원에서 아이와 자전거 타고, 아이스크림을 고르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내가 달려오며 그렸던 그림이었는데, 아이는 집에 홀로 남겨둔 채였다.

사춘기가 좀 이른 듯 한 아이의 곱지 않은 말투가 거슬려 나도 한마디 했다.

“왜 짜증을 내는데? 짜증은 내가 내야지.”

아차! 이미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때 참았어야 했다. 아이가 뾰로통해져선 입을 닫아 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걸 다 해주고 싶어 왔는데, 내가 원하는 걸 아이가 다 거부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가 왜 온다고 했을까, 나를 왜 부른 거야? 세 시간을 넘게 달려 왔건만 조카나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아이는 이제 겨우 10살 난 철모르는 아이라지만, 나는 쉰이 넘은 지천명의 할머니가 아닌가. 하늘의 명령을 알기는커녕 열 살 난 아이의 마음 하나도 읽을 줄 몰라 이 사달을 내었으니…….

저녁에 조카가 퇴근하고 온 뒤에도 아이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내가 조카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아이를 일러바치기라도 하듯 어려움을 나열했다.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조카에게 이모라는 내가 며칠을 참지 못하고 낮 동안 아이와 불화한 이야기들을 토해 내었던 것이다. 내 얘기를 듣던 조카가 곧바로 “그럼 이모, 내일 집에 갈래?” 하고 물었다. 그 말이 서운하게 들리긴 했지만 대구 외할머니한테 보내면 된다는 말에 그러마고 했다.

조카의 호출을 받고 집을 나선 지 사흘 만에 나는 다시 짐을 꾸렸다. 가져온 옷가지들은 채 입어보지도 못하고 되가져와야 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지경이었다. 아이는, 코로나가 잠잠해져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하니 대구 외할머니 집에 맡기기로 했다.

중간 지점인 함양에서 언니와 조카손주와 나, 셋이 만났다. 언니는 친 손주를 둘이나 데리고 나왔다. 외손녀까지 가면 셋을 돌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부산까지 갔던 것인데, 60 중반의 언니가 손주들을 보며 힘들어하는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보탬이 좀 되어볼까 했던 것이었는데, 언니에게 짐만 하나 더해 주고 오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언니가 내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고, 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고지에서 하산하는 패잔병처럼 되어 쓸쓸히 귀향했다. 그렇게 내 지천명 육아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아무런 준비 없이,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서둘러 간 것이 잘못이었을까. 조카가 내게 아이의 성격을 미리 귀띔해 주었더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 나 혼자서 바다, 카페, 맛집 등을 여행하는 상상을 하며 정작 조카와 아이의 고단한 현실 속으론 바짝 다가서지 못했던 것 같다. 전업 주부인 내가 직장맘인 조카의 고충을 어찌 다 알수 있을까마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니 얼마나 힘들지 대충 들여다보였다.

아이와 잘 지내고 왔으면, 일을 마치고 나서도 처음처럼 조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천명으로도 모자라니 내 나이가 조금 더 들었다면, 조카 손주의 나이가 좀 어렸다면 우리의 만남이 성공적이지 않았을까.

뒤엉킨 시간들을 지우지 못하고 자꾸 되뇌이며 아쉬움을 갖는다. 조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이모할머니가 철이 없어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한 거 같아서...... 그러면서 다시 간다면 이제는 아이와 진짜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하고 또 쉽게 생각 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아이에게 달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놓고서는 말이다,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