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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거북이걷기대회 '코로나19와 나의 일상이야기 수필공모전' 우수상 "눈물의 파란색 도장'
직장맘고충상담소 조회수:494 61.81.128.10
2021-01-04 10:26:53

눈물의 파란색도장

50대의 운전면허증따기 도전기

정량미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리였던가! 드디어 내가 해냈다는 환희에 기쁨의 눈물이 눈가를 적셨다. 2개월 전 필기시험은 단번에 합격했는데, 기능시험은 네 번이나 고배를 마시고난 뒤였으니 합격이라는 소리가 얼마나 기뻤겠는가!

네 번째 낙방하고 집에 돌아오던 날이 생각난다. 버스를 탈 자격도 없다며 투덜투덜 집까지 걸어오던 날, 청명해야할 가을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차라리 비라도 주룩주룩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못하는가! 정말 바보란 말인가! 오늘은 딸들에게 뭐라고 말할까. 사정이 있어 시험을 미뤘다고 할까?

사실, 나는 7년 전 아이들 둘을 데리고 전주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어렵게 둥지를 튼 곳은 3층집 옥상의 컨테이너방.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셋이서 생활하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이 정도 불편은 참아야 했다. 빈손으로 나온 나는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40대 중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식당을 전전하며 파트 타임으로 일을 했다. 결국 나에게 안정된 일터를 준 곳은 전주 우아동에 있는 마트였다. ‘직원구함’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찾아갔다가 천직과 같은 직장을 얻게 된 셈이다. 내가 일한 곳은 공산품코너, 사실 여성이 하기엔 벅찬 일이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올리고 내리고 풀고 채우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더구나 나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왼손 장애가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것을 말하지 않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 누구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점장님이 “왜 거짓말 하셨어요?”라며 손 아픈 것을 물어보셨고 그때 나는 “내가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굳이 말을 안 했을 뿐,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는 모범사원이 되기도 했다. 그 마트는 내가 얻은 최초의 직업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직장이었다. 덕분에 두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지금은 전세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영문인지, ‘코로나19’라는 괴질이 번지면서 매장이 어렵게 되고 결국은 지난 여름에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나와 동료들, 어디에다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일, 계약직 인생의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일터에서 주는 얼마만큼의 퇴직금을 받고 직장을 떠나야 했다. 당분간은 실업급여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이미 나이는 50대에 들어섰고, 마땅히 찾아야할 일자리도 당장은 없었다. 안 보던 길거리정보지도 가져다 보고, 신문 사이에 끼어드는 전단지도 무심코 보지 않았다. 시간제로 일할 만한 일자리도 찾아보고 아는 분에게 전화해 혹시 알바자리라도 있는지 알아봤다.

고민 끝에 자동차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대리운전이나 과일 장사, 아니면 영업용 택시기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귀한 돈 70여만 원을 투자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방학 때라 대학생들이 많았고 50대 여성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았다. 내일 시작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나에게는 절박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학과시험은 1차에 꽤 높은 점수로 쉽게 합격을 했다. 점수를 받아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웠고 딸들에게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고 큰 소리로 자랑도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내가 해냈다는 소리를 외치고 싶었다. 내 생애 처음 국가시험에 합격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한번 기능시험을 보려면 10여만 원 가까이 들어가는데, 1차 시험은 오르막길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내 실력이 이정도인데, 속은 상하지만 스스로를 자책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2차 기능시험을 봤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20여 미터를 남기고 시동이 꺼져 낙방하고 말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시험 감독관에게 차가 고장 나서 그랬다며 강하게 항의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길한 일은 3차까지 이어졌다. 3차 시험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않고 운전을 해 불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변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벌써 세 번째 불합격이라니 누가 알까봐 창피하고 낮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래도 나와 우리가족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네 번째는 꼭 합격해야한다는 각오로 두 주먹을 들었다.

네 번째 시험 보던 날, 그날은 꼭 붙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시험은 오후 4시지만 아침 7시에 면허시험장에 가봤다.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기능시험장 코스를 힘차게 두 번이나 달리면서 코스를 익혀두었다. 이번에는 꼭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예감과는 다르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컴퓨터 음성으로 “전조등을 켜시오!”라는 지시어가 나오고 말았다. 결국 전조등을 켜면서 방향지시등을 건드려 마이너스 5점을 받게 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발하세요!”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출발을 해, 몇 미터 나가기 전에 “9번 차량 불합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앞이 깜깜했다. 네 번째 불합격, 내가 왜 이럴까. 멍청한 것인지, 딸이 말했듯이 기계치란 말인지, 순간 모든 것들을 다 집어치우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나에게는 핸디캡이 있다. 아픈 손가락! 몇 년 전에 마트점장님 앞에서 당당히 아프지 않다고 말했던 그 손, 태어날 때부터 아픔을 갖고 살았던 왼손, 엄지와 검지로 어떤 물체를 비틀 때는 힘이 없어 미세하고 섬세한 동작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 계기동작시험에서 전조등 켜기가 나오면 불안했다. 처음으로 아픈 왼손이 미웠다. 나를 이렇게 낳아준 엄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네 번째의 불합격은 나를 하루하루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동차 면허증을 따려고 투자한 돈이 벌써 백만 원이 넘었다. 코로나19가 원망스럽다. 안정된 내 직장을 잃게 하고, 자동차면허증을 따려는 나에게 절망감을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멈추지 않는 눈물이 볼 아래로 흘러내렸다.

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도 백 번을 더 했다. 연이은 불합격은 나의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지금은 내 마음처럼 흐린 하늘에 빨간 줄이 촘촘하지만 반드시 합격이라는 파란색 줄 도장을 받고 말 것이리라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오기로 싸워야 한다. 80대 할아버지도 70대 할머니도 차를 몰고 다니는데, 50대인 내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각오로 연습을 시작했다. 학원을 옮겨 아무도 모르게 학원을 다녔다. 다행스럽게 새로운 선생님은 매우 침착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나 또한 여러 번 떨어진 덕분인지 처음보다는 실력이 훨씬 좋아지고 안정감이 생겨 눈으로 보일 정도로 변한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이 시험 보는 날이 왔다. 다른 때보다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아침도 먹지 못했다. 다행히 시험보기 전에 연습차량으로 시험을 봤는데 두 번 다 합격을 했다. 드디어 시험을 치루는 차례가 되었다. 1시간 전에 시험장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볼세라 한쪽으로 가서 우황청심환을 먹었는데도 별 약효가 없는 것 같다. 심장은 지진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손바닥은 땀방울로 젖어들고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는데 아뿔싸 화장실까지 가고 싶어진다,

주문을 외우듯, ‘침착하자, 침착하자’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자신 있게 시험용 차에 올랐다. 기계동작시험도 무사히 잘 마치고 출발선을 떠났다. 오르막길을 넘고 교차로를 지나 ‘ㄷ’자 주차를 마치고 나니 한결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가속코스를 지나 우측 방향등을 넣으며 종점에 도착했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들려오는 스피커소리,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오늘도 시험용 차에 오르면서 속으로 제발 전조등 켜라는 말만 나오지 말라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인지 오늘도 컴퓨터에서는 어김없이 “전조등을 켜시오!”라는 명령이 나왔다. 그러나 벌써 몇 번의 고배를 마셨기에 이제 더 이상 실패 할 수는 없었다. 오른손까지 동원하며 최선을 다해 조작을 했다. 감점 없이 잘해냈다. 무엇 하나 노력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없으리라. 기뻤다. 포기를 모르는 나, 도전하는 나의 의지가 오늘은 정말 멋지다.

저녁 햇살에 나뭇잎들이 반짝거렸다. 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들과 같이 시험 보던 사람들도 박수를 쳐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주먹헹가래를 쳤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연습면허증’을 받아들고 어린아이처럼 뛰었다. 그냥 내가 자랑스러웠다.

7년 전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시골에서 전주로 나올 때의 불안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거리의 정보지를 뒤질 때의 초조함, 네 번째 운전면허시험에 실패하고 돌아올 때의 절망감들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내 삶의 큰 전환점이 될지 모르는 자동차 운전면허증, 이것만 있으면 대리운전을 할 수 있고, 조그만 트럭을 끌고 다니며 어떤 장사라도 할 수 있으니 정말 고마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따라 하늘이 높고 맑다. 포기하지 않는 삶! 도전하는 나의 의지가 오늘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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